2009년 03월 19일
UMC? 랩?
내가 좀 더 어렸을 적에,
나는 크나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
내가 듣는 음악이 나를 대변해주며,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들이 나의 아이덴티티를 규정짓는다는 착각 말이다. (물론 음악뿐만이 아
니라 작가나 감독등도 포함되겠다.)
가만히 주위를 둘러보면, 이러한 착각은 나만 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주위에 아이돌에 열광하던 아이들도 그랬고, 나중에 대학와
서 만난 작가주의 문호들의 신봉자들도 그랬으며, 졸업하고 나서 만난 기존의 성공자들에 대한 맹신을 보이던 성인들도 그랬다.
이런 착각의 문제점이 뭔가 하면, 자신이 좋아하는 장르의 공급자의 개성에 너무 물든 나머지, 자신이 거기에 물들어있다는 것 조
차 알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솔직히 이런 상태의 사람들에게 머리를 좀 식히고 주위를 둘러보라고 요구하는 것 자체
가 무리인 경우가 있는데, 왜냐하면 이들은 자신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공급자의 방법론을 곧 자신이 선택한 방법론이라고 착각
하기 때문이다. 즉, 주위 사람이 자신이 맹신하고 있는 방법론이 유일무이하지 않으며, 수 많은 것 중에 하나라고 말했을 경우, 그것
은 자신이 숭배하는 공급자 뿐 아니라, 자신의 아이덴티티까지 위협하는 언사라고 판단할 수 있다.
한 가지 말해둘 것은, 이러한 착각은 어떤 특정 분야에 애착을 가지고 있는,(혹은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었을 일이
고, 또한 겪을 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착각에서 벗어나는 데는 자신도 미처 예상치 못했을 계기가 필요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나에게 있어 Keith Jarrett은 헤게모니 그 자체였다. 그의 압도적이고 명료한 터치는 나에게 다른 대중음악을 배척할 힘
을 주었고, 영혼이 떠도는 것 같은 즉흥연주는 다른 음악의 방법론을 천박하게 보이게 했다. 지금와서 생각하면 정신병에 가깝지만,
나는 Keith가 나에게 음표라는 언어로 속삭인다고 생각했다.
이런저런 여건상, 나는 그의 개인사를 전혀 몰랐다. 인터뷰도 찾아본적이 없고, 심지어는 그의 국적조차 몰랐다. 알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그가 음악으로 모든것을 말해주는데 인간 Keith Jarrett에 대해 더 무엇을 알 필요가 있는가? 내 안에서 그는 고고하고 긍지
높은 인간이었으며, 라일락 향이 나는 똥을 누는 인간이었다.
하지만, 타임즈에 실린 펫 매스니에 대해 쓴 그의 칼럼을 읽고서야 그가 편협하고 옹졸하며 지독히도 구린 똥을 싸지르는 인간이라
는 것을 알았다. 그 칼럼의 골자는 펫 매스니의 임프로비제이션이 기계적이고 정형화된 면이 있기 때문에, 즉흥연주가 생명인 재즈
로써의 가치를 가지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난 정말 실망스러웠다. 펫 매스니는 분명 1류 기타리스트는 아닐지도 모른다 (적어도 테크닉적으로는). 하지만, 그는 음정이 아니
음색으로 이야기하는 기타리스트다. 그의 기타톤은 그 누구도 시도해본적 없는 질감과 양감을 가지고 있고, 이것만으로도 그는 자
신의 세계를 충분히 펼쳐보일 수 있는 사람이다. 펫 매스니에 대한 이 정도의 가치평가는 그 당시의 나로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것
이었음에도, 나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음악적, 혹은 인생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는 Keith Jarrett은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때 깨달았다.
Keith Jarret은 인간이구나.
그의 음악은 하없이 천상을 지향한다고 해도, 그의 인간성은 그렇지 못하구나. 그도 보통 사람이구나.
맘에 안드는 사람이 있고, 그걸 까고 싶어하는 인간이구나.
자신이 규정짓고 있는 메인스트림에, 인기에 편승해서 스르륵 끼어들려고 하는 펫 매스니가 존내 맘에 안드는 보통 사람이구나.
이렇게 당연한 사실을, 나는 그때까지는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나와 Keith Jarrett은 생판 남이라는 것 또한 뼛속깊이 깨달았다.
내 생각이 그의 생각이 될 수 없듯이, 그의 생각이 내 생각이 될 수는 없다는걸.
물론 인간적 매력과 음악적 매력은 전혀 별개의 것이기 때문에, 자렛옹은 아직도 내가 가장 아끼는 뮤지션 중에 하나이다.(얼마전
신작 앨범 자켓에서 늙고 앙상한 모습을 봤을때 눈물이 났을 정도로.)
이런 일이 좁디좁은, 뮤지션당 앨범 1만장도 팔기 힘든 우리나라 힙합씬에서 벌어진다고 생각하면 그저 웃음만 나올 뿐이다.
버벌진트는 분명히 UMC를 깔 수 있다. 그도 인간이고, 그는 UMC가 존내 맘에 안들 수 있고, 자신은 랩에 라임이 꼭 있어야된다고
생각하는데 라임이 없는 UMC의 래핑은 랩으로도 안 보일 수 있다.
그건 그의 생각이다. 그가 인터뷰를 통해 공개적으로 말했든 아니든 간에, 그것은 버벌진트가 자신의 위치와 나름의 힘을 이용한
자기 어필이다.
하지만, 힙합 음악을 듣는 당신들의 생각은 아니다. 저건 버벌진트의 생각일뿐, 당신들의 음악적 견해는 아닌거다.
펫 메스니를 메인스트림 재즈 뮤지션이라고 생각한 리스너들이 있어 펫 메스니가 이젠 주류가 됐듯이,
UMC의 랩을 랩이라고 생각하는 리스너들이 있으면 그것은 이미 랩인거다.
아무리 라임이 나고 랩이 났다고 한들, 임프로비제이션이 나고 재즈가 났다 한들,
임프로비제이션이 기계적이라고, 라임이 없다고 재즈나 랩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그 이후에 그 위에 온갖 아름다운 요소를 더해온 수 많은 뮤지션들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것과 다름이 없다.
'~가 아니다.' 라는 말은 함부로 쓰는게 아니다. 특히 모든 가능성을 인정받아야하는 예술씬에서는...
차라리 '~는 존내 후진 ~다.'가 더 타당하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 by | 2009/03/19 23:21 | 트랙백 | 덧글(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