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의 기억 - Ralph Towner


과연 Jazz의 영역이 어디까지인가를 이야기할때, 빠질 수 없는 이름이 있다면 그건 ECM일 것이다.



중학교 2학년 여름에 만났던 나의 첫 재즈 음반은 ECM이었고,



두번째 음반도 ECM이었으며..



세번째 음반도 ECM이었다. (쓰고보니 그냥 ECM 덕후로군)






첫번째 시디는 keith jarrett trio의 standard Vol.1 이었으며,



두 번째 음반이 바로 랄프 타우너의 diary였다.








이 시절의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지금이라고 뭘 더 알았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지만..


그래도 그때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그런 나에게도, Standard Vol.1 중에서 마지막 트랙인 러닝타임 15분 30초짜리 God Bless The Child는 충격 그 자체였으며..


"이쁜 것이 맛도 좋다" 라는 내 평소 고정관념을 공고히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이유인즉슨... 내가 첫 재즈 음반으로 키스자렛 트리오의 음반을 고른건... 정말 자켓이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다.)






그야말로 재즈의 Z도 몰랐지만 뒷걸음질로 쥐를 한번 잡아본 때묻은 교복을 입고 있었던 중딩은,


자신감을 가지고 두 번째 앨범도 같은 레이블에서 (당시 나는 레이블의 개념도 몰랐다) 가장 아름다운 자켓을 가진 앨범을 골랐다.



















-실로 아름다운 자켓이 아닌가-


당시 나는 이 앨범을 고르는데 세 시간이 넘게 걸려서, 직원이 의심쩍은 눈으로 쳐다보았던 것까지 기억이 난다.


최종까지 후보에 남았었던 keith jarrett의 Goldberg Variation (아.. 순백의 미여..), Keith Jarrett Trio의 At the Deer Head In을

제치고 결국 나는 랄프 타우너의 손을 잡았고...


그 대가인 1만 6천원을 내미는 내 손은 아마 떨리고 있었겠지.(한달치 밥값이었으니...)





** 여담이지만, 내가 시디를 사는것은 뮤지션의 지적재산권을 존중해서도, 내 양심에 걸려서도 아니다.

아무리 음악을 담기 위한 '매체'로서의 역할을 하는 껍데기라 할 지라도...

대부분의 경우에는 재킷부터 부클릿, 그리고 시디 위의 프린팅까지 모두 내게 있어서는 가치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ECM의 경우에는, 그 재킷 자체가 팝아트라고 해도 손색이 없으며, 마음에 드는 재킷의 경우에 알맹이가 마음에 들지

않은 경우는 단 한번도 없었다. (운이 좋았겠지만.)




아직도 기억난다.



아름다운 재킷이 걸려있는 케이스 커버를 살짝 들면,

그 안에 다소곳이 누워있는 은빛 시디.

그리고 그 위에 지나치게 크지도, 작지도 않은 검은 프린팅.

오직 앨범명과 뮤지션, 그리고 레이블명만 새겨져있는 시디의 광채는 사춘기 소년의 맘을 멀게하기에 충분했다.





-------




랄프 타우너는 전형적인 멀티 인스트루멘털리스트(Multi-Instrumentalist)라고 할 수 있다.


어릴 때 부터 온갖 악기를 섭렵하며 자라난 그는,


나중에 버클리음대에서 교수직을 역임할 때에도 기타와 피아노 두 가지를 맡았을 정도로 각 악기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이 포스트에서 소개하고 있는 Diary라는 앨범은 그러한 그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는 음반이라 할 수 있는데

본 앨범에서 사용된 악기는 모두 랄프 타우너 본인의 멀티 더빙에 의해 이루어졌으며,(심지어는 징(Gong)까지.)

이러한 시도는 앨범 전체를 통해 한 가지 주제의식을 명확히 나타내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것은, 바로 '사색'이다.




사실, 난 아직도 랄프 타우너 만큼 솔로활동이 어울리는 ECM 뮤지션을 본 적이 없다.

그 키스 자렛조차도, 트리오나 퀄텟 활동에 비하면 솔로 활동은 청취자에 따라서 호불호가 극히 갈리건만..



랄프 타우너는 몇번에 걸친 공동앨범 작업(ECM 뮤지션들의 특징이다)과 솔로 활동을 비교했을때,

압도적으로 솔로홛동 쪽이 음악적 순도가 높다.



썰은 이정도로 해 두고, 한번 들어보자.




Get your own Box.net widget and share anywhere!



일단 4번트랙 icarus를 들어보기 바란다.


무언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가?


일단, 이 기타는 기본적인 6현 어쿠스틱이 아니다.


본인이 이 앨범을 위해 고안한 12현 기타로서, 기타와 피아노의 듀엣이 주가되는 본 앨범에 풍성함을 불어넣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악기 구조상 특징과 비브라토를 극히 제한하는 랄프 타우너의 주법의 특징상, 이 현악기의 음색은 차갑고 메마르다.


하지만, 사춘기 소년의 가슴 속에, 이 특징적인 음색과 멜로디는 이미지가 되어 깊게 뿌리박혔다.


구름이 꽉 낀, 파도조차 치지 않는 얼어붙은 바다위를 두드리는 빗방울 같은 스트로크의 파도가 흐르고 나면,


어렴풋이 하늘이 보이는듯한 텐션리스 메이저의 차례가 돌아온다.


그리고, 아스라이 페이드 아웃하는, 다른 곳으로 떠나는 비구름 같은 느낌으로 곡은 끝난다.






당시 나는, 이 곡을 듣는 내내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그의 터치 하나하나, 티킹과 스트로크, 풀링오프와 해머링. 모든 음표 하나하나가 이미지가 되어 가슴을 두드렸다.







그리고, 이 앨범의 끝은 8번 트랙인 Silence Of Candle이 장식한다.


사실 8번 트랙 자체는 그리 뛰어난 곡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물론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앨범 전체를 한 개의 통합된 예술품으로 봤을 때, 이 8번트랙은 필수불가결이라 할 수 있다.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몽환적인 분위기를 떠나,

가장 통속적인 멜로디라인과 페달링(랄프 타우너는 이 앨범에서 피아노를 마치 바로크 시대의 쳄발로처럼 통주저음, 즉

리듬악기로 사용하고 있는데 유일한 예외가 바로 이 8번 트랙이다)을 통해 청취자에게 현실감각을 돌려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다른 곡과는 달리, 풍부한 페달링을 통해 충분한 울림을 만들어내고, 그리고 적절한 템포유지와 적당히 촉촉한 터치를 통해 (다른

곡에 비해 터치 자체도 훨씬 부드럽다) 숨도 못 쉬고 끌려온 청취자에게 깊은 심호흡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곡이다.




----


취향을 많이 타는 앨범이라 생각한다. 메인스트림을 선호하는 청취자라면 그 건조함에 목이 마를 것이고, 일반적인 화이트

재즈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여백을 견디기 힘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단 한번 구입한 후에 몇번이고 반복해서 듣다보면, 분명히 듣는 사람 나름의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는 음반임에는

틀림없다고 생각하며, 일청을 권하는 바이다.





***** 파란계정이 스트리밍을 못 견디는 듯 하여, 전에 만들어두었던 Box에서 플래시 위젯을 따왔다. 이쪽이 훨씬 편하긴 한데..

어떨지 모르겠다.

이 글과 관련있는 글을 자동검색한 결과입니다 [?]

by Moda | 2008/05/23 04:04 | Moda의 음악 이야기 | 트랙백 | 덧글(1)

트랙백 주소 : http://Moda.egloos.com/tb/4375152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rainy at 2008/05/23 22:02
역시나 8보다 4번곡이 낫군요. 뭐랄까 제가 생각할 때는 참 ECM적인 사운드라는 생각만 덜렁 드는 게 사실이긴 합니다만.

그보다 갑자기 Standards Vol.1에 관심이 가기 시작하는군요. 제가 God Bless the Child를 무지 좋아하거든요. 괜찮으시면 언제 저거 떠놓으셨다가 저 한번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 이전 페이지다음 페이지 ▶